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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침묵

 

우리에게 알게 하신 진리는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은 것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니 진리의 성령의 보증을 받는다.

이처럼 ‘베뢰아운동’ 또한 사람에 의해 주관되거나 사람에게 보증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역사로 계속되어야 한다. 사람의 뜻이나 지혜가 앞서게 되면 시기와 분쟁이 있게 될 것이며 그 마지막은 하나의 분파 운동으로 끝나버리게 될 것이다.

분명 우리의 시작은 확실했다. 하나님의 뜻에서 빗나가 방황하고 있는 한국교회를 향해 ‘하나님의 의도(意圖)’라는 분명한 푯대를 들어올렸다. 이 푯대 아래 많은 교회가 모였고, 하나님을 아는 행복과 기쁨으로 충만했다.

우리를 향한 교권의 횡포와 핍박이 강해질수록, 스데반처럼 하늘을 우러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주목한다. 진리의 성령께서 하나님의 영광으로 위로해 주셨으니 이것이 ‘베뢰아운동’을 함께하는 자부심이 아니었던가.

필자는 지금까지도 이러한 행복과 기쁨이 충만하다. 이 기쁨으로 인하여 모든 것을 참고 견딜 수 있었으며, 이단시비라는 멍에 또한 쉽고 가벼웠다.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붙들고 간다.

우리는 새 해에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향해 달음질하자.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행복으로 행복하자. 그 영광의 힘을 좇아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심과,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자.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우리 가운데서 영광을 얻으시고 우리도 그 안에서 영광을 얻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좁은 문을 선택했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서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 그렇기 때문에 진리의 길을 걷는 자는 외롭다.

우리의 고독이 깊을수록 엘리야처럼 부르짖자. ‘하나님의 사심과 우리가 주의 종이 됨과 우리가 주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을 오늘날 알게 하소서.’ 우리의 옳음은 사람의 말이나 뜻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의(義)와 함께함이다.

‘기독교베뢰아교회연합총회’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은 것을 하나님께서 증거해 주시기를 기도하자. 혹 사람의 뜻이나 사람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이다.

침례 요한이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를 들으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성공되는 총회가 되자. 그의 영광을 구하는 자에게 주께서 모든 것을 더해 주실 것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목회자 성장대회나 연차총회 때마다 눈물이 쏟아진다. 출입을 할 줄 모르는 아이처럼 불쌍히 여겨 주시기를 간구한다. 아직도 무엇을 어떻게 섬겨야 할지 깨닫지 못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작은 아이에게 주의 말을 맡기신 것이다. ‘기독교베뢰아연합신문’을 통해 우리를 향한 주의 심정과 사랑과 슬픔과 탄식을 가감 없이 전하고 싶다. 시간이 갈수록 번민이 깊다. 우리 총회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총회가 되기를,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이스라엘과 아말렉의 전쟁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선다.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아론과 훌이 모세의 손을 붙들었다.

시무언의 피곤한 팔을 생각하자. 우리가 모두 함께 하나님의 지팡이를 붙들어 올리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승리를 주실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영원한 승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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