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거룩한 침묵

 

이 세상은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는 지식과 교만이 넘쳐난다. 하나님에 대한 오해로 일컫는 마귀의 궤계다.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를 두 동강 나게 한 마귀의 일은 셋째 하늘을 어지럽히고 음부의 깊음 가운데까지 이르렀으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다.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 당신의 민망함을 헤아려 본다. 만물을 짊어지신 당신의 멍에는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게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 올리우셨음이다(딤전3:16).

셋째 하늘의 혼란까지 짊어지셨으니,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롬11:34-36).

목회라는 무거운 멍에 아래 신음하는 자에게 보여주신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다. 그 순간부터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쉽고 가볍다. 진리의 성령께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생각나게 하시고 기억나게 하셨으니 그리스도의 겸손과 온유를 본받는다.

성도를 섬기는 일에서 최고의 힘겨움은 나를 대적하고 거역하는 자들이다. 사람의 힘과 능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기에 주님의 발 앞에 엎드린다.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과 온이 당을 짓고 대적하는 말을 모세가 들었을 때 엎드린 것처럼 말이다(민16:1-4).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본다.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히12:1-3).

그리스도의 온유를 깨닫고 사나워진 마음이 평온을 되찾는다. 이렇듯 나의 믿음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더듬어 찾아간다. 목회라는 험한 길에서 찾은 영원한 진리다.

‘코람데오(coram Deo)’는 ‘하나님 앞에서’라는 뜻이다. 모세는 시내산 광야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고, 일평생 하나님의 영광 앞에 선다. 과연 내가 하는 말이나 일이 하나님 앞에 선한 것인가. 하나님의 뜻대로 복종하고 있는가. ‘코람데오(coram Deo)’는 자기 스스로를 성찰하는 신앙인의 자세다.

사도인 베드로와 요한도 공회의 위협과 대적 앞에 서 있을 때 ‘코람데오(coram Deo)’를 외쳤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행4:1-21).

우리의 신앙은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사람은 의(義)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영생을 취한다.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거로 증거 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이 명령을 지키라.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실 것이다(딤전6:11-16).

우리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써야 한다. 이 가운데 한 가지는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한 것이니, 거역한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하라.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시며 저희를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바 되어 그 뜻을 좇게 하실까 함이다(딤후2:14-26).

우리의 싸움은 마귀와의 싸움이 아니라 나 자신과의 싸움이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것을 생각하라. 하나님과 나 사이에 평안이 역사한다면 모든 어려움을 이길 수 있다.

위로